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친구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주일 우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두 명이 코로나에 확진됐대. 그래서 우리교회 모든 목회자들과 지난주일 예배 때 참석한 성도들이 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돼” 코로나에 걸린 줄 모르고 예배에 참석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기 전날 그 친구목사와 같이 자전거를 탔기 때문입니다. 계양역에서 출발해 반포대교까지 갔다 왔습니다. 오며 가며 쉬는 시간까지 5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식사도 같이 했습니다. 그 친구가 코로나에 걸리면 제가 걸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기도가 나왔습니다. “우리 친구 목사 확진되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친구를 위한 기도였지만 사실은 저를 위한 간구였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기도 예배를 드린 후 개인기도 시간에 제일 먼저 “우리 친구 목사 코로나로터 보호해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그 전날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치고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게 기도하다 말고 잠에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깨자마자 또 다시 “친구 목사 보호해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교우들의 마음이 이렇게 절박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주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그 심정으로 문제를 놓고 기도할 것입니다. 쿡 찌르면 도와 달라는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어떤 분이 큰 위기를 만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은행에서는 신용을 파악한 다음 대출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급한 대로 빌릴 만한 분도 없습니다. 그 분이 금요기도회 시간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기도를 인도하는 목사님이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여 세 번 외치고 기도합시다.” 
 그러자 모든 교인들이 큰 소리로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릅니다. 이 분도 역시 “주여~ 주여~ 주여~”하고 주님을 부릅니다. 그 다음에 “우리 회사 대출을 받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기도를 인도하는 목사님이 육신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할 때도 여전히 “대출받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 밖에 안 나옵니다. 이것이 어쩌면 간절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놓고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제 자신을 보면서 그 동안 제가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죄악시하거나 수준이 낮은 기도로 여기도록 폄하한 것이 아닌지 회개하게 됩니다. 어쩌면 제가 그 동안 교우들에게 신앙생활의 길을 가르쳐주었을지 몰라도 성도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매정한 목자는 아니었는지 책망을 받습니다. 물론 문제해결 받기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신앙은 아닙니다. 그래도 문제 해결이든 무엇이든 주님을 부르는 일은 숭고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힘들 때 부를 수 있는 분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