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서 벗어나라
 트라우마(trauma)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뜻은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에 얼굴이나 머리를 맞게 되면 그 다음 인코스로 오는 공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잘 때리지 못합니다. 상대방 투수는 자꾸 인코스로 공을 던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결국 슬럼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은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거나 설령 다시 운전을 하더라도 사고를 당했던 현장에 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이 모든 현상들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야곱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잃고 난 뒤에 생긴 것입니다. 요셉은 잃었으나 막내아들 베냐민만은 절대 잃으면 안 된다는 집착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빠집니다.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에 큰 기근이 듭니다. 야곱은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이집트로 아들들을 보내지만 베냐민만은 가지 못하게 합니다. 먼 나라로 갔다가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더욱 겹겹이 쌓여 야곱을 위축되게 합니다. 

 트라우마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도전하게 되고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고 자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고질적인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납니다.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러 갔던 10명의 아들들 중에 9명만 돌아오고 둘째 시므온이 볼모로 잡힙니다.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시므온이 풀려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절대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버팁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깊이 고민하던 야곱은 드디어 결단합니다. ‘내가 내 아들을 잃으면 잃으리라“ 베냐민까지 보내는 아버지 야곱은 이렇게 트라우마에서 벗어납니다. 

 ‘잃으면 잃으리라’라는 결단은 일종의 내려놓음입니다. ‘저 막내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끼고 살았는데 이제는 놓아주자. 내가 아들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야. 설령 내 아들을 잃는다 하더라도 내가 붙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결단이 바로 내려놓음입니다. 그런데 잃으면 잃겠다는 결단으로 내려놓은 야곱에게 막내 베냐민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까지 찾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 어떤 사람은 물질, 건강 등이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내가 이 아들(딸)을 이제 내려놓겠다. 주님께 맡긴다. 내가 설령 건강을 잃더라도 그 일을 할 거야, 내가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이제 자유하리라’ 이런 결단은 당신을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참 신기한 것이 집착한 것은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는데 잃으면 잃겠다고 하면 덤으로 더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