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연관된 나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내면세계가 강할수록 남도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남도 돌보게 됩니다. 내가 실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 때 남의 실수도 보듬어 주게 됩니다. 강한 사람은 권위적이고 사납고 양보할 줄 모르며 자기주장이 썬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면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힘들어 할 때 더 고통스러워하며 허둥대는 부모가 있습니다. 자녀 문제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그럴 때 자녀는 더 불안해합니다. 자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나는 더 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았다”는 식으로 정죄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녀가 부족하거나 흔들릴 때 부모는 기다려주며 의연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도 자기의 문제를 놓고 씨름하며 서서히 극복해갑니다. 부모는 해결사가 아니라 멘토이어야 합니다. 역시 내면세계가 강한 부모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떻게 강한 내면세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격려도 필요하고, 자기를 거듭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골로새서 2장에 있는 이 말씀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세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에게 예수님은 ‘주’가 되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고 책임지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러면 주인 되시는 주님의 통제 안에서 행하기 때문에 막 살지 않습니다. 한편 주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내면을 굳건하게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을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는다고 합니다. 좋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건강하고 견실한 열매를 맺듯 최고로 좋은 토양이 되시는 예수님에게 뿌리를 내린다면 우리는 얼마나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예수님에게 뿌리를 내릴 때 예수님으로 세움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교훈도 받습니다. 그럴 때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뿌리내리는 삶입니다. 

 저는 이것을 조금 더 쉽게 ‘예수님과 연관된 나’라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과 연관된 나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나이며, 예수님이 책임지는 나입니다. 나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면 부족하지만 예수님과 연관된 나를 볼 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소설가 알롱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원인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볼 때 불안해진다‘고 말입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자녀가 우리 아이보다 더 잘 되는 것을 볼 때, 그 집이 우리 집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을 때, 그 사람보다 내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보다 더 여유있게 살 때 자꾸 자신을 다그치며 불안해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를 볼 때, 다른 이와 비교하며 나를 볼 때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관된 나를 보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니까요. 이것이 내면의 아름다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