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 내가 알아
  서양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제일 중요합니다. 당연히 나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렇게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자유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여기는 문화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동양 사람들은 ‘우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당연히 나의 자유보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공동체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들이 없는 겁니다. 주위에서 비난을 받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을 경계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 당연히 관계를 잃게 될 것도 두려운 겁니다. 
  공동체와 우리가 중요한 동양의 문화에서는 ‘마음’을 자아만큼 귀하게 여깁니다.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중국에서도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사업이 가능하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사람(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을 의미할까요? 한 사람으로는 존재할 수 없고, 두 사람이 서로 돕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담아낸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자유가 제일 중요하다 보니 자기의 문제나 미래도 자기가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만나고, 자기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낄 때 불안하게 됩니다. 서양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정적인 감정은 ‘불안’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서양문화 속에서 쓰여 진 성경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 365번이나 있는지 모릅니다. 365일은 1년의 날을 말하니 매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에 그렇게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동양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겪는 부정적인 감정은 ‘화’입니다. 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습성이 있다 보니 아주 중요한 사람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화가 생깁니다. 나는 남편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서 배신감을 느낄 때 찾아오는 게 화입니다. 억울함, 섭섭함도 일종의 화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화병이 많고, 삐지기도 잘 합니다. 
  당연히 한국인에게 좋은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위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지만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합니다”라는 메시지보다 “주님도 당신의 마음 압니다”라고 할 때 한결 더 위로와 은혜를 받더라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알아줄 때, 제가 수고한 것을 인정해 줄 때, 제가 힘든 것을 알고 손잡아 줄 때 그렇게 힘이 나더라고요.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와서 이삭을 주워가며 살기 위해 그렇게 애쓴 것을 보아스가 알아주었을 때 크게 위로를 받지 않습니까? 보아스의 말 속에서 “네 마음 내가 알아”라는 메시지를 읽은 것 아니겠어요? 
  어려운 때라서 힘든 이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 마음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그에게 기대며 주절주절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때라서 기도도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란 내 마음 알아주시는 주님 품에 안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