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자급자족
 제가 서울의 어떤 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하고 다섯 달 만에 큰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수련회를 다녀오다가 신호위반한 자가용과 충돌하여 9명이 입원을 했습니다. 저도 다쳤지만 청년들을 돌보느라 입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차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제가 운전자이며 지도자였기 때문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입원한 청년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부모님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저를 때리려 했습니다. 어떤 분은 양광교회 문 닫게 하겠다는 험한 말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가 덕이 없으니까 교회 차가 사고를 난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죄인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해야 했습니다.

 그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들었던 말들이 귀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에 큐티를 했습니다. ‘생명의 샘‘이라는 큐티집의 그날 본문은 디모데후서 2장이었습니다. 주어진 본문을 읽어 내려가던 중 9~10절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런 고난을 다 참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자기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쓰여 진 말씀이지만 저에게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펑펑 울었습니다. 답답하여 낙심할 상황에서 그 말씀은 저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제게 공격과 면박을 가했던 부모님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결국 그 분들은 더 이상 저를 꾸중하지 않았고, 부모님 중 한 분은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목회자가 주는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에 의해 주어지는 말씀만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에게 주는 말씀을 스스로 받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큐티는 매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문제는 무엇이고, 현재 자신의 고민에 주시는 해답은 무엇인지 발견합니다. 격려를 받기도 하고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큐티에 익숙해지면 신앙이 굉장히 성장하게 됩니다. 저는 큐티를 ‘은혜의 자족자족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신앙을 관리하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이 말씀대로 어떻게 살 것인지 결심하며 말씀을 적용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어렵고, 성도와 함께 교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은혜의 자급자족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큐티로 은혜의 자급자족에 도전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