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노래는 지가 알아서 살아난다
 얼마 전 TV에서 ’히든 싱어‘를 본 적이 있습니다. 트로트 가수 진성씨가 부른 ’안동역에서‘라는 노래에 대해 들었습니다. 원래 이 곡은 진성씨가 우연히 받았고, 처음에는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아름아름 알려지게 되었고, 히트를 치게 됩니다.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 중 하나가 됩니다. 진성씨가 이 곡을 그렇게 소개한 후 한 여자 게스트가 한 말이 제 마음에도 다가왔습니다. “양희은씨가 그러는데 좋은 곡은 지가 알아서 살아난답니다.”라고.

 노래 중에는 음반을 출시하자마자 순식간에 인기를 얻는 곡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알려지며 공전의 히트를 치는 노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수 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노래가 바로 지가 알아서 살아나는 곡이겠지요. 어찌 노래뿐이겠습니까? 문학작품도 그렇고, 그림 같은 예술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의 실력도 그렇겠지요. 꾸준히 이력을 쌓고 남들이 보든 그렇지 않든 우직하게 노력을 하고 실력을 쌓으면 사람들이 금방 알아주지 않더라도 결국 그 실력 자체가 알아서 살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사람의 이야기가 퍼져나갑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깁니다. 그가 쌓아왔던 실력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제 제자 중에 대학교 교수 임용에 도전했는데 아쉽게 탈락한 이가 있습니다. 마지막 최종 후보까지 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맞았지만 이사회에서 교수 임용 자체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 잡은 자리를 빼앗긴듯하여 저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제자에게 양희은씨가 했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동안 제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심지가 곧게 준비해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쌓은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은 그 학교의 교수 자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반드시 어딘가에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실력은 지가 알아서 살아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룻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역시 자기처럼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를 따라 갑니다. 늙은 시어머니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게 한결 안정된 길인데 어쩌자고 따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룻은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입니다.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이라도 주어 살겠다고 작정합니다. 남정네들이 이삭을 줍는 젊은 여자를 보고 낄낄대지만 괘념치 않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길만 찾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보아스는 처음 본 룻에게 환대합니다. “왜 저 같이 비천한 여자에게 호의를 베푸세요?”라고 묻는 룻에게 보아스는 “네가 그 동안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소문이 나서 다 알고 있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룻은 남들이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알리고 싶어서 헌신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게 옳은 길이라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을에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보아스의 말에 룻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 길이 맞는 것 같아서 남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묵묵히 걸었는데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품도 지가 알아서 살아났다고 할까요? 물론 하나님이 기억하신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